하면 좋습니까?

저자 : 미깡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 책소개 |

결혼이 하면 좋은지 동거, 이혼, 신혼, 비혼, 워킹맘의 친구들이 결혼에 대한 생각을 가식없이 솔직하게 얘기한다.

연인과 짧지 않은 시간동안 동거하면서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는 한 여자가 연인으로부터 청혼을 받은 순간 결혼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결혼을 하면 지금의 평화가 지속될지, 원치 않은 책임들이 딸려오는 건 아닌지 주변의 이혼한 친구와, 비혼주의 친구, 신혼인 친구, 워킹맘의 친구들로부터 솔직하게 고민을 나누면서 결혼에 대한 깊은 고민이 시작된다.

| 리뷰 |

만화로 보여주는 이 책은 결혼에 대한 여성들의 고민, 생각 등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결혼은 반드시 필요한걸까? 결혼 없이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 수는 없는 걸까?

난 지금 이대로 만족하는데 왜 그는 청혼을 한 걸까?

주인공의 고민은 연인이 청혼을 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신혼인 친구는 커리어를 쌓는 자신의 직장 생활보다 가정주부가 꿈이라며 결혼을 찬성하고, 이혼한 친구는 자식이 없을 때 이혼해서 다행이라고 안심하고, 결혼보다는 자유로운 사랑이 좋다는 친구는 비혼주의이다. 유일하게 아이가 있는 친구는 일과 육아까지 병행하느라 정신 없어 결혼에 대한 입장이 어떤지 얘기할 틈도 없이 바쁘고 얼굴도 비추기 힘들다. 하지만 그녀의 상황에서 친구들은 워킹맘이 이런거구나.. 하고 짐작하게 된다.

결혼에 대한 서로 다른 가치관은 각기 자신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에서부터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난다.

그저 난 결혼하면서 의레 짐작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행복한 꿈보다 현실적으로 딸려오는 책임들에 한 걸음 물러서게 되고 질색하게 된다. 서로를 배려하면 견딜 수 있는 무게가 될 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니 비혼주의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아닐까.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분명 결혼을 꿈 꿨지만, 현실은 행복한 결혼은 그저 꿈일 뿐인 것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해서 현재의 자신의 행복이 미래에서도 보장될거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 모든 것에는 완벽하게 만족 할 수 없고 이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찬성하는 신혼인 친구는 결혼이 만족스럽다. 하지만 맞벌이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어수룩한 가사일이 마음에 들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혼한 친구는 결혼 때 못느꼈던 자유를 느낀다. 하지만 혼자 사는데 두려움과 어려운 상황에 부딪친다.

비혼주의 친구는 자유로운 사랑을 꿈꾸지만 좀처럼 연애만 하면서 마음에 맞는 연인을 찾기가 힘들다.

워킹맘인 친구는 일과 육아때문에 친구를 만날 시간조차 빼기 힘들다. 하지만 아이로부터 행복을 느낀다.

연인과 동거중인 주인공은 현재 생활이 만족스럽다. 하지만 미래에도 여전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처음에는 이 책에서 나온 5가지 유형의 등장인물들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건 워킹맘이었다. 친구들이 만나서 고민을 나누고 수다를 떨지만 자신의 상황때문에 얼굴도 비추기 힘들고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없고 깊은 얘기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날씨, 좋은 장소에서 함께 바람을 쐬러 갈 때조차 워킹맘 친구는 함께하지 못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그런 친구를 안쓰러워한다. 하지만 문득 깨닫고만다. 결혼이든 인생이든 각자 자기의 행복을 추구하고 가는 길이 다르기 마련인데,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다고 그 친구가 안쓰러운건 그저 나의 잣대로 판단한 것이 아닐까 하는.

워킹맘 친구는 일과 육아에 정신없어도 마냥 그게 불행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아이로부터 행복을 느끼고, 뿌듯함과 대견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 느끼는 행복은 다르기 마련이고, 힘들어하고 불안한 부분도 당연히 다르기 마련이다.

결혼과 비혼. 이 두가지에서 모두가 같은 행복과 같은 불행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각기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추구하는 것도 다르며 이상(理想)도 다르다. 어떠한 선택이든 그것은 절대적인 불문율이 될 수 없기에 각자의 길 속에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에브리데이

저자 : 데이비드 리바이선 (출판사 : 민음사)

 

정말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책을 읽는 동안 오로지 이 책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을 보냈다.

A는 주인공이자, 매일 다른 사람의 몸으로 깨어나는 '사람'이다. A는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다. 그렇기에 A는 남자도 사랑할 수 있고 여자와도 사랑할 수 있다. 성별도, 종교도, 취미도, 성향도 어떠한 것에도 편견을 가지지 않는다. 어쩌면 A의 이러한 특성은 그가 매일 다른 사람의 몸으로 깨어나는 특수한 위치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6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바뀐 몸으로 살면서 A는 평범한 사람처럼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가족이 갖고 싶었고, 친구가 갖고 싶었다가 어느덧 스스로만의 '규칙'을 만든다. 빌려 쓰는 몸의 주인의 일상을 되도록 지켜주는 것. 하지만 레이넌이라는 소녀를 만나게 되면서 A는 '규칙'을 깨면서 그녀를 사랑하고, 만나기 위해 노력한다.

하루의 시간, 사랑에 빠지기 충분했을까?

고작 단 하루. 레이넌의 남자친구 몸으로 그녀를 만났던 것뿐인데 A는 그녀를 사랑하고 만다. 처음엔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하지만 A에게 '하루'는 짧은 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보통 자신의 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달리 매일 다른 몸으로 깨어나는 A에게 '하루'는 일회성이자, 도전일지도 모른다.

매일 낯선 환경을 겪어야 하는 A가 그날 선택한 작은 '일탈'은 레이넌과 보냈던 시간을 특별하게 만들었고, 어쩌면 달콤했을지도 모른다. 그 달콤한 시간 동안 A는 레이넌의 남자친구이되, 남자친구가 아닌 A의 행동을 하면서 그녀와 마음을 나눴을 거라 믿는다. 그녀와 보냈던 시간 동안 A는 숨겨왔었던 자신을 드디어 꺼내 보이기도 했던 거다.

A의 존재는 악마인가

A는 우연히 '네이선'의 몸을 하루 빌려 쓰게 되었을 때 네이선이 집요하게 자신을 찾으려고 노력할 거라고는 절대로 예상하지 못했다. A에겐 일탈이었던 그 하루는 악마에게 몸을 빼앗겼던 것뿐이었다고 주장한다.

A는 이때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가 '악마'로 비칠지도 모른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실체'가 없으며 몸을 '빌려'쓴다고 생각했지만 '훔친다'라고는 생각을 못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악마'일지도 모른다는 고민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재미있게도 A는 좋아하는 책도 있고, 좋아하는 음악도 있으며 그의 도덕성은 어느 사람들과 별다를 게 없다. 약에 취한 몸에 들어가게 될 때면 A는 몸이 이끄는 '본능'대로 유혹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책을 읽으며 힘겹게 하루를 견디기도 한다. A의 도덕성과 그의 가치관이 몸의 주인에게 '좋은 영향'이 되는 깨달음이 될 수 있는 바람도 남기기도 한다.

어쩌면 A가 몸을 빌려 쓴 하루는 몸의 주인이 자신만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벗어나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작은 파장을 심어주는 것 같다.

스스로를 위한 하루를 찾아가기 시작하다

A는 레이넌을 사랑하게 되면서 매일같이 바뀐 몸으로 '규칙'을 깼다. A의 하루의 시작은 그녀로부터 얼마나 떨어진 거리에 있는지부터 확인하게 되었고, 그녀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다.

어쩌면 사랑이 '몸'도 '실체'도 없는 A를 점점 바뀌도록 한 것은, 결국 A가 스스로를 찾아가는 발판이 될 수 있게 한 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그녀와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그녀와 내일을 아무렇지 않게 기약할 수 있는 바람은 어쩌면 당연한 거다. A는 자신의 처지를 알면서도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이런 존재는 오직 자신뿐이었다고 믿었던 A에게, 한 몸에서 원하는 대로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다고 유혹한다면 당연히 끌리지 않았을까? 매일 몸이 바뀌는 것이 어느덧 당연했고, '빌려 쓴다'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당연했다.

레이넌과 함께 할 수 있으며 A가 바라는 이상향의 몸과, 좋은 인간관계가 있는 그 자리는 역시 너무나도 유혹적이었다. 지긋지긋한 자신의 처지를 드디어 걷어차고 안정적인 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A는 결국 자신의 가치관을 선택했다. 그 기회가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A의 입장에서 그건 살인이었다.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매일 바뀐 몸에서 깨어나는 일상은 어쩔 수 없어도, A 스스로가 자신의 의지로 몸을 차지하는 건 옳지 않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거야말로 네이선이 말한 '악마'일지도 모른다. A는 자신이 빌려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 당당히 내밀 수는 없어도 결코 악마라는 의심은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A는 자신의 가치관과 자신만의 도덕성으로 스스로가 존재함을 믿는다. 그의 믿음은 사랑보다 확고해서, 결국 스스로를 위한 하루를 찾아 떠나는 것을 선택한다. 사랑을 위해 몸의 주인으로 하여금 일탈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A 스스로를 위한 일탈을 하는 것이다.

A는 그렇게 자신의 존재한다는 사실을 남에게 보여줄 거다. 더 이상 숨지도 않을 것이며,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온전히 가지게 될 것이다. 자신의 자리를 가질 수는 없어도, 그 일탈이 사람들에게 특별한 인상을 심어주면서 A를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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