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저자 : 송해나 (출판사 : 문예출판사)

| 책 소개 |

우리는 임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남성에겐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고, 임신을 안 한 여성에겐 '지금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알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못 느낀 건 아닐까?

그렇다면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여성들만이 임신한 여성들을 누구보다 잘 배려할까?

이 책은 임신하게 된 저자가 임신 기간 동안 겪는 사회의 무지와 배려 없는 제도에 대한 경험을 일기로 써 내려간 책이다. 회사의 동료로부터, 아빠로부터, 오고 가는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낯선 이들로부터, 심지어 의료진 등 전문가들에게까지. 임신기간 동안 배려 없는 태도에 저자가 써 내려간 일기다.

| 서평 |

이 책을 보면서 내내 느꼈던 감정은 '자괴감'이다. 임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서러울 일을 많이 겪게 되는 걸까? 사회에서 제 몫을 해내고 있는 '한 사람'이었는데 임신했다는 이유로 외적 내적으로 여러모로 자괴감을 느끼는 순간이 계속 찾아온다.

직장에선 임신으로 유난 떤다는 시선과 눈초리를 받아야만 하고, 임신 초기부터 후기까지 아주 다양하게 온갖 불편함과 고통 등을 수반하는 자신의 몸은 자신감을 무너뜨리고 움츠러들게 만든다.

출산의 고통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한 '사람'에게 위로보다는 '자연의 섭리'를 운운하는 전문가들.

엄마라면 할 수 있다고. 엄마가 이것도 못하면 어떻게 해요?라고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는 사람들.

임신기간 중 온갖 장기가 밀려나고, 식도가 역류하고, 골반이 아프고, 배가 뭉치고, 숨이 헐떡이는데 '유난'이라고 하는 사람들.

어련히 임신한 제 몸 스스로 안 돌볼까, '이거 먹으면 아기한테 안 좋지 않아?' '태교는 잘하고 있어?' 고나리질하는 사람들.

위의 사람들은 결코 낯설지 않은 사람들일 거다. 주변에 한 번쯤 있었을 테고 멀리 돌아보지 않아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의식적으로 '나 자신'이 이런 적이 있었을 수 있으니까.

악의 없는 질문마저도 '무지'로 인해 임신한 사람들에게 큰 실례가 된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심지어 임신과 출산을 겪은 같은 여성마저도 임신한 사람에게 저렇게 무례할 수가 있다는 걸 알았다.

동질감과 위로, 배려를 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 돈 드는 게 아니고 그렇게 수고스러운 일도 아닌데 말이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임신하면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 어떤 불편함과 고통을 수반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심지어 임신할 때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다 까먹었다고 저자의 어머니는 말씀하실 정도다.

사회에서 이런 것들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오직 임산과 출산의 숭고함, 자연스러움, 모성애의 위대함만으로 포장만 해서 당사자들도 그것에 세뇌된 걸까? 그래서 그 고통을 잊고 또 임신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는 걸까?

이 나라가 임신과 수반되는 고통과 부조리함을 모를 리가 없다. 오히려 잘 알기 때문에 쉬쉬하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이건 단순히 한 사람이 유독 임신을 힘들게 겪은 경험담이 아니며, 유난스러운 것도 아니다.

모두가 알아야 하는 상식 중의 하나인 거다. 사회에서 임신체험 등을 대중화해서 모두가 간접적으로나마 임신이 어떤지를 체험하고, 임신하면 어떤 변화와 증상이 생길 수 있는지 교육을 했으면 좋겠다.

종이에 살이 베어서 피가 조금만 나와도 '아프겠다.' 작은 위로 정도라도 할 줄 아는 세상이 유독 임신한 여성에게 가혹한 건 결코 나 혼자만의 예민함과 유난함이 아닐 거다.

아파도 별다른 조치를 받을 수 없는 심정을.

임신했다는 이유로 면역력이 떨어지고 약해져가는 무거운 몸을.

가만히 있으면 배가 뭉쳐서 아프고, 숨만 쉬어도 헐떡이는 '비정상적'인 몸을.

다 자연스러운 거고, 태아는 건강하다며 임산부를 돌보지 않는 배려 없는 사회는 잔혹하다. 내 몸의 장기가 제 위치를 벗어나 폐를 압박하고, 온몸이 붓고, 누워있기만 해도 통증을 수반하는데 당사자라면 어느 누가 겁을 먹지 않고, 아무렇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임신은 출산하기까지 임신한 사람만의 싸움이라고도 한다. 타인이 어떻게 손을 써 줄 수도 없다고. 그렇다고 해서 이런 고통과 불편함을 280일 동안 24시간 내내 겪는 사람에게 작은 배려나 안심할 수 있을 위로 정도도 못해주는 사회가 우습다. 심지어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 배려 인식이 잘 되어있다고 하는 거 보면 이 나라가 문제일 것이다.

임신과 출산은 결코 누구와도 동떨어질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존재'부터가 '한 사람'의 고통과 배려 속에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며, 나 또는 가족, 연인, 친구가 겪을 수 있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모성애 따위 운운하지 말고, 엄마의 본분, 엄마의 책임 따위 절대 운운하지 말자. 애를 낳고 키우면서 모성애가 키워지는 거지 애 밴다고 모성애가 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며, 낯선 내 몸을 걱정하고, 나의 안전을 챙긴다는 이유로 '유난이다.' , '엄마가 그렇게 걱정만 하면 태아한테 안 좋아'라는 소리로 엄마 답지 못한 자격 미달의 사람으로 만들지 말라는 거다.

임신한 순간 '한 사람'의 주체성은 배제되고 '태아'를 중심으로 임산부에게 '엄마 자격'을 운운하는 것은 인신공격이나 다름없다. 당사자는 여전히 자신만의 주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태아는 태아고, 그녀는 그녀인 것이다.

저출산이 걱정된다면, 배려부터 제대로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가임기 여성'의 출산이 저조하다며 여성을 하나의 물건처럼 잣대화하며 통계를 뽑기 전에 임신이 뭔지부터나 알고 제도를 마련하는 게 우선이 아니겠냐는 거다.

 

모성의 모습을 '규정'하는 순간, 아기를 낳은 여성은 '비정한 엄마'와 '맘충'으로 이분화된다.

여성을 '악녀' 혹은 '성녀'로만 분류하는 것처럼.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25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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